10 Pictures

10 Pictures 

 

«10 Pictures»는 10개의 그림(Picture)을 본다. 여기에서 ‘그림’이라는 용어는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며1, 시각예술, 그러니까 회화는 물론이고 그 외의 평면매체 즉 ‘평면 위에 그려진 이미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의미를 아우르는 넓은 표현으로써 사용하고자 함을 일러둔다.2

«10 Pictures»를 이야기하기 전, 회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야 할 것 같다. 라스코 동굴벽화가 발견된 이래, 인류는 끊임없이 그림을 통해 재현을 시도했고 이야기를 전달했으며 마침내 텅 빈 화면만을 남겨두기에 이른다. “형태의 제로”라는 선언과 함께 전시된 말레비치의 <검은 정사각형>을 보자. 미술관에 수직적으로 걸린 이 까만 화면은 이성을 의지하고 신봉하는 남근적 위세로 ‘보기’를 강화하였으며, 그렇게 박제된 모더니즘의 신화는 평면 그 자체를 블랙홀 삼아 모든 것을 수렴시키며 완벽히 닫힌 공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말레비치의 <검은 정사각형>이 처음으로 전시되었던 «마지막 미래주의전, 0, 10»전의 광경. 천장 아래 모서리에 걸려있는 검은 정사각형의 위치는 러시아의 보통 가정집에서 이콘이 걸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191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1.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pageSize=10&searchKeyword=그림.

2.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는 1970년대 후반 매체의 문제, 이미지 제작, 작가와 관람자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며 «Pictures»(1977)를 기획하고, 동명의 논문을 발표(1979)한다. 이를 통해 퍼포먼스와 비디오 등 당시의 뉴미디어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픽쳐”를 제시하였다.


 

 

 

수상한 질문들 

 

회화는 완결된 매체여야 하는가? 회화는 정말 닫혀있는가? 물질적 매체에 비물질적 요소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회화가 대상의 재현일 때, 회화는 재현하는 대상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가? 추상은 구체적일 수 없는가? 왜 회화는 추상 혹은 구상의 범주로 독해하는가? 회화에서의 공간감은 무엇인가? 그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가? 오늘날 공간과 관계 맺으며 프레임을 넘어선 회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차원 평면 안에서 구조를 짜내고 깊이감을 형성하는 회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은 정말 납작한가? 우리는 왜 여전히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며, 전시공간을 찾아 발길을 돌리는가? 손에 쥔 디바이스가 이 모든 것을 대신 할 수 있지 않은가? 

오늘날 디지털 디바이스를 위시한 매체를 경유하는 탈신체화 논의는 당연하게도 ‘감각의 확장’과 연결된다. 이제 가상현실, 유사현존, 탈신체화 같은 단어들은 우리 삶에 달라붙어 있다. 매체 간의 실험이 다양해지고, 장르의 구분이 점점 더 무용해진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10 Pictures»는 핑거 스크롤이 아닌 몸을 움직이는 전통적 경험과 현존의 감각을 소환한다. 지금, 여기 ‘전형적으로’ 걸려/놓여있는 평면 매체들은 이미지만을 제시한 채 ‘보기/보여짐을 강제해온’ 그림에서 벗어나 스스로 그림이 함의하는 여러 장면과 깊이를 포착/경험하는 순간으로 관람자를 유도한다.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것이 아닌 상황, 시간, 빛, 움직임 등 항상 변화하는 비물질적 요소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끊임없이 유동하는 매체로 이 그림들을 바라본다면, ‘손의 움직임’을 통해 그려지고 ‘몸의 이동’을 통해 읽히는/보여지는 수행의 매체로서 이 그림을 바라본다면, 더이상 이성의 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경험을 통해 그려지고 지각됨으로써 완결되는 매체로 확장해 그림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평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비물질적 요소와 연계하는 그림이 새로운 시각장을 제안할 수 있다면, 평면 그 자체 안에서 다중의 깊이감을 창출해냄으로써 확장을 시도하는 움직임 역시 지속되고 있다. 평면 안에 다중 레이어를 생성하려는 시도는 화면을 단편적 이미지가 아닌 건축적 구조-공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다중의 레이어와 평행선을 달리는 또 하나는 다시점을 중첩하는 화면이다. 하나의 화면에 담길 수 없는 시점들이 2차원 평면 위에 중첩되며 창출해내는 입체적/해체적 화면은 그림을 환영으로 혹은 절대 평면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하나의 회화적 구조-공간으로서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그림 읽기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해 다중 시점을 하나의 화면 안에 구현하는 이혜인, 조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부터 겹쳐 올린 레이어로 회화의 내적 구조를 창출해내길 시도하는 정하슬린, 평면 안의 붓질이 만들어내는 공간성, 그것에 비치는 빛이 만들어내는 시간성, 중첩된 재현을 통해 다른 각도의 시각성을 조망하는 박세진, 구체성이 배제된 그림-오브제로 움직임의 구현과 개입을 매개하는 임정수가 만들어낸 이 공간은 확장된 그림의 장이자 동시대 매체와 해석에 대한 또 하나의 제안이 될 것이다. 본 전시는 네 작가의 열 개의 그림이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시각과 관람 경험에 따라 다른 작품, 전시로 읽히길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림은 더이상 완결된 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미래적 시간성을 함의한 수행적 매체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왕 객석 없는 무대라면, 자유로이 돌아다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에서 그림을 바라보면 제일 좋을 일 아닐까?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이 그림의 시작이었다면 그림은 여전히,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10 Pictures
2020. 9. 25 – 11. 7
참여 작가. 박세진, 이혜인, 임정수, 정하슬린
기획. 신지현
그래픽 디자인. 용세라
사진. 전명은
후원. 서울문화재단
10 Pictures
2020. 9. 25 – 11. 7
Artists. Park Sejin, Hyein Lee, Lim Jeongsoo,
             Haseullin Jeong
Curated by Jihyun Shin
Graphic Design by SERA YONG
Photography by Eun Chun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Related publication

10 Pictures
2020

Read More →

KO / 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