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모르포즈 : 그릴수록 흐려지고,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내가 시간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아직 없으며
한 장소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사라져 버렸고
한 인간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이미 사망했으며
시절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장 보드리야르 <사라짐에 대하여>에서 발췌
사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사물의 외피, 그 가시적 형태는 무엇을 대변하는가? 이들은 어떠한 맥락에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는가? 우리가 어떠한 개념에 다가선다는 것은 제거와 삭제의 과정을 수반한다. 의미화는 곧 그 반대에 있는 것을 지워냄으로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선을 논하기 위해 악을 제거하고, 영원을 위해 시간을 제거하며, 존재는 공허의 제거로부터 나오듯이 말이다. 명료한 언어적 설명은 내용의 효과적 전달을 가능케 하지만, 그 선명함의 뒤편으로 흩어지는 감각을 다잡기에는 역부족이다. 특정한 개념과 언어로 사물을, 그리고 사건을 명명하는 순간 이미 가장 치열했던 현상은 고정된 형식으로 남겨지게 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을 재현하고, 명명하며, 개념화함으로 그것을 존재하게 하고, 동시에 사라짐으로 떠밀며, 그 생경한 현실성으로부터 절묘하게 멀어지게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명명되기 이전에 가장 치열하게 존재하며, 하나의 사물이 명명되고, 재현과 개념이 그 사물을 포박하는 순간 기울기 시작한다.
<아나모르포즈 : 그릴수록 흐려지고,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적 도구들이 가진 조건, 또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상황을 하나의 사건으로 명명한다. 이는 사물의 형태를 인식하고,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동원하는 개념이 오히려 그것이 가진 의미의 지평을 축소하는, 조금 과장하자면 소멸로도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계를 인정하기에 형식이나 형태에 이미 부여된 의미에서 벗어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조금 더 중립적인 차원에서 눈앞의 대상을 사물이라 부르는 것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전시에는 눈앞의 이슈를 장르나 매체의 차원에서 각자의 미술적 도구를 동원하여 끊임없이 설명하려는 시도만 있을 뿐이며, 단일한 의미를 위해 어딘가에 쉽게 정박하지 않는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이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디지털화되어가는 동시에 육신이 사라지게 된 사물이 겪는 가공할 속도의 반대편에서, 예술의 언어로 사물을 번역하고 형태로 고정하는 과정에서 (비)가시적/ 미시적 서사와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의 궤적을 꿰어내고자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 가장 처음 마주하는 최고은의 작은 사물은 제품과 작품, 공예와 조각 사이 어디 즈음에 위치한 듯 보인다. 휴대가 가능한 크기와 그 형태는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물건을 환기하지만, 동시에 쉽게 부서질 듯 연약해 보이는 물질성은 사물을 그저 바라보는 작품의 위치에 놓는다. 또한 사뭇 그럴싸해 보이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파악할 수 있는 표면의 패턴이나 그라인더 자국, 기포 등은 외형의 무결함에 균열을 가한다. 그녀의 작은 조각이 가진 형태, 묘사, 재료 등의 문제는 관객의 소유욕을 자극함과 동시에 산업 재료에서 예술 작품으로 이어지는 작가 개인의 수행적 경로를 추적하게 만든다. 그 뒤에서 생생한 색감으로 눈을 사로잡는 김경태의 작업은 사진 촬영과 편집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배경으로부터 분리된 피사체와 스케일의 변주, 촬영과정에서 생겨난 그림자의 노출은 대상에서 사회적 기능이나 문화적 의미를 삭제한다. 그리고 눈으로 미처 도달할 수 없었던 사물 고유의 표정은 물질의 표피적 차원, 미시적 서사로 관객을 이끈다. 한편, 로와정의 시놉시스는 등장인물이 부재한 각본이다. 그것에는 사건의 배경이나 물리적 환경 역시 소거되어 있다. 부분적으로 보이는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손실률은 이 이야기를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작가는 관객에게 원인과 결과가 불분명한 서사, 혹은 그저 나열된 단어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이 모종의 시놉시스를 완성하는 임무를 부과한다. 마지막으로 한성우의 회화는 참조하는 사물에 이미지가 머무르길 거부한다. 그가 포착하고자 대상은 사물의 인상이나 위상을 결정짓는 (비)가시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회화라는 이름으로 그려내는 이미지가 담아낼 수 있는 것을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태도를 동시에 가진다. 어쩌면 긍정과 부정의 사이에서 표출되어 속도와 강도, 차이와 중첩으로 만들어진 화면 위 긴장과 갈등, 조화의 상태는 구상과 추상이라는 구분에 속박되기 이전 그가 보고자 한 사물을 둘러싼 공기와 가장 닮아있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저항을 위한 해답을 찾기보다는, 고정된 이미지라는 소실점 너머를 상상하는 하나의 단출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본 전시는 언어나 묘사와 같은 규정에서 벗어나 해체주의적 차원, 즉 지연을 통한 차이를 가늠하며 오늘날 사물의 존재 방식을 묻고, 그것에 응답하는 개별 주체들의 반응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모든 언술은 우회와 환유의 방식으로 실체의 주변을 맴도는 예술적 행위, 그리고 결과물로 제시된 사물을 기호로 치환하고 보편적 의미로 몰아세우거나, 끊임없이 상식과 보편의 가치 안으로 편입시키려 할 것이다. 그리고 고정된 사물의 외피는 현실의 제약(언어적 서술, 혹은 미술적 묘사 등) 안에서 주체의 발화와 타자의 수용이 일치하는 순간만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 전시는 이와 함께 미끄러지는, 그리고 어긋나는 순간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궤적으로 그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전시에서 형태를 구축하는 일련의 모든 실천은 사물 그 자체의 외피에 머무르는 묘사이기보다는, 작가 개인의 신체로부터 시작하여 행위의 매개인 도구로 이어지는 서사이거나,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가시적 영역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서사를 전시라는 형식적 시공에 맞춰 잠시나마 옮겨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여작가. 김경태, 로와정, 최고은, 한성우
기획. 김성우
디자인. 유명상
공간디자인. 최병석
후원 : 서울문화재단
Anamorphose : Depict but Blurry, Distant but Vivid
Artists. Kim Kyoungtae, RohwaJeong, Choi Goen, Han Sungwoo
Curated by Kim Sung woo
Design. Yu Myungsang
Space design. Cho Byoungsek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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